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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집에 갇혀서 생각한 것들

— 사랑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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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랑의 이해〉 (2022, JTBC) 에 대하여

 

지방 은행을 배경으로 다섯 남녀의 사랑을 담담하게 그린 드라마입니다. 화려한 사건 없이, 일상의 감정과 관계의 온도를 섬세하게 따라갑니다.

 

안수영 (문가영)  명확한 관계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결정적인 순간마다 뒤로 물러선다. 사랑하고 싶지만 다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선다.

하상수 (유연석)  감정은 있지만 결단이 늦다. 오래 머뭇거리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다.

박미경 (금새록)  꾸밈 없이 솔직하게 사랑하는 인물. 이별의 순간에도 상대를 위해 끝까지 웃으며 보내준다.

정종현 (정가람)  많이 주면서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랑을 한다.

소경필 (문태유)  박미경의 전 연인. 스스로 먼저 사랑을 파괴해버리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아무 감정 없는 친구인 척 곁에 머문다.

 

드라마 리뷰가 아닙니다. 그냥 보다가 떠오른 것들을 적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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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몸이 안 좋아서 이틀 내내 집에 갇혀 있었어요.

 

커튼 사이로 햇살은 들어오는데 나갈 수가 없어서 소파에 누워 뒤적이다 Netflix를 켰고, 그렇게 〈사랑의 이해〉를 만났습니다. 보는 내내 자꾸 멈추게 됐어요. 화면 속 사람들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지 못하는 모습이 —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들처럼 느껴졌거든요.

 

다 보고 나서도 여운이 가라앉지 않아서 AI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어요. 말을 풀다 보니 오래 마음 안에 고여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 그냥 한번 꺼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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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펐던 장면, 그리고 소경필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슬펐던 건 박미경이 마지막 이별을 말하던 순간이었어요.

 

가슴 깊은 데서 끓어오르는 걸 꾹꾹 눌러 참으면서 — 그래도 끝내 웃으며 이별을 이야기하던 그 얼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안수영과 하상수의 이별은 솔직히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어요. 제 눈에는 둘 다 다치지 않으려는 방패를 앞세우다가, 가까이 다가온 사람에게 결국 사랑이 아닌 상처를 건네고 만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 방패가 오히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베어버린 거죠. 스스로 판 우물에 스스로 빠진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따로 있었어요. 소경필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이 드라마가 네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어요. 소경필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 그 사랑이 너무 두려워서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끝내버린 것처럼 보였어요.

 

삶이 두려워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사람이 있듯이 — 소경필은 사랑이 두려워 스스로 먼저 사랑을 파괴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박미경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아무 감정 없는 척 친구인 양 머물렀고요.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말 있잖아요. 근데 제가 보기엔 그 안에 진짜 친구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쪽이 관계가 끊길까봐 두려워서 자기 감정을 숨기고 그냥 버티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거든요. 소경필이 딱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더 마음이 쓰였던 건, 그가 자신의 상처를 안수영에게도 그대로 흘려보낸 것 같다는 거예요. 스스로 사랑을 파괴하는 방식을 — 안수영도 어느새 닮아가게 됐으니까요. 상처는 그렇게 조용히 사람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경필의 사랑이 제게는 가장 용기 없는 사랑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동시에 — 어쩌면 가장 애처로운 사랑이기도 했고요.

 

박미경은 달랐어요. 잘못한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 하는 슬픔이었습니다. 예쁜 사랑을 하려 했는데 상대방의 행동으로 이별을 맞아야 했고, 그 순간에도 — 내가 울면 저 사람이 힘들까봐,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며 보내주었어요.

 

박미경의 사랑에는 꾸밈이 없었어요. 자신에게 솔직하고, 상대방에게도 솔직했습니다. 계산도 없었고, 체면도 없었고, 가공되지 않은 감정 그대로였어요. 저는 그게 그 사람의 사랑을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든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다듬으며 살잖아요. 감정을 다듬고, 표정을 고르고, 말의 온도를 계산합니다. 그렇게 가공된 것들은 상대의 마음에 가닿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미끄러지고 말아요. 그 모든 다듬음을 거부하고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박미경의 사랑 방식이 —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슬펐습니다.

 

그건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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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결국 인간관계 아닐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을 뭔가 신비롭고 특별한 것이기 이전에, 인간관계의 한 형태로 보는 편이에요. 존중, 배려, 신뢰, 성실, 책임 —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그 원칙들이 사랑 안에도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같거든요. 다만 사랑은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걸 쏟아야 하는, 가장 뜨겁고 적극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사랑이 그 기본 원칙을 가장 단단하게 지켜야 하는 관계이기도 한 것 같아요. 높이 올라가는 건물일수록 기초가 더 깊어야 하잖아요. 원칙이 흔들리면 그 균열은 어떤 관계보다 깊고 오래 남더라고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존재라는 것도 저는 꽤 소중하게 생각해요. 빨간색이 노란색보다 더 좋은 색이 아니잖아요. 두 빛깔이 만나 어우러질 때 새로운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것처럼 — 서로의 다름이 서로를 더 완전하게 만들어주면서 나란히 걸어가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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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보호 본능을 넘어서는 것

 

사랑을 원하면서 동시에 다치지 않고 싶은 마음 — 저도 그 두 가지를 함께 품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근데 그 두 마음이 오래 같이 있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사랑이라는 건 처음부터 취약함을 껴안는 일이니까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둔다는 건 — 거절당할 수도, 상처받을 수도, 언젠가 멀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안수영을 보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느꼈어요. 명확한 관계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명확함을 마주해야 할 순간마다 한 발씩 물러났으니까요. 상처의 계산은 부지런히 하면서, 사랑의 계산은 하지 않는다고 했던 셈이랄까요.

 

상대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자신을 잃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거든요. 다만 그 사랑을 조금씩 넓혀 상대방의 자리까지 가져가는 것 — 그게 사랑이 아닐까 해요. 반대 방향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더 멀리 걸어가는 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기준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 내가 40만큼 이익이 되어도 상대방이 50만큼 손해라면 그 행동은 안 합니다. 반대로 내가 40만큼 손해라도 상대방이 50만큼 이익이 된다면 — 망설임 없이,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해요.

 

즐거울 수 있는 건 사랑을 '너와 나'가 아닌 '우리'로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의 눈으로 보면, 내가 -40이고 상대가 +50이면 우리는 +10이잖아요. 손해가 아니라 함께 이익을 나누는 거니까요.

 

먼저 내어주는 사람 곁에는 결국 함께 키워가는 사람이 남더라고요. 100원을 먼저 내어줬을 때 70%는 받기만 하고 20%는 돌려줄 거예요. 하지만 나머지 10%는 함께 키워나갑니다. 그 한 사람이 결국 100만 원의 가치가 되는 것 같아요.

 

잘 주는 것만큼, 상대방이 나한테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리를 열어두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요즘 느껴요. 받을 문을 닫아두면 사랑은 한쪽으로만 흐르는 강이 되니까요. 먼저 내어주되, 상대도 줄 수 있도록 — 그 따뜻한 균형이 사랑을 오래가게 하는 것 같아요.

 

자기 보호 본능을 '우리'의 온기로 넓혀가는 것 — 그게 결국 나를 가장 잘 지키면서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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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의 숟가락

 

어릴 때 미션스쿨을 다니면서 들었던 설교 하나가 지금도 마음 어딘가에 따뜻하게 남아 있어요.

 

천국과 지옥 사람들은 똑같이 2미터가 넘는 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대요. 지옥에서는 그 긴 숟가락으로 자기 입에 넣으려다 대부분을 흘리고, 부족하니 남의 것을 빼앗으려다 또 흘린답니다. 천국에서는 마주 앉아 서로의 입에 조심스럽게 떠먹여 줍니다. 한 톨도 흘리지 않고 모두가 배불리 먹고요.

 

사랑도 그런 것 같아요. 상대를 먹여주는 게 결국 나도 배부르게 되는 방법이라는 거.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요.

 

"연애 관계에서 나는 행복하고 상대방은 불행한 경우는 없다. 내가 불행하고 상대방만 행복한 경우도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상대방이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솔직해야 하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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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축적이 아닐까요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시간과 관심과 작은 행동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조용히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어왔는데 — 그 오랜 시간이 제게 가르쳐준 게 하나 있어요. 매끄럽게 가공된 장면보다 날것의 질감이 담긴 한 컷이 훨씬 오래, 깊이 마음에 남는다는 거예요. 빛과 그림자가 날카롭게 엇갈리는 순간, 현의 마찰음이 살아있는 연주, 보컬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노래 —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오히려 더 오래 남더라고요.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외모에서 시작하는 설렘은 이해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랑은 그 사람의 가치관, 일상의 선택, 사람을 대하는 온도 — 그런 작고 진실한 것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피어나는 감정이니까요. 시간이 천천히 만들어주는 질감 — 그게 사랑의 진짜 얼굴인 것 같아요.

 

오래전에 할머니가 저를 사랑하셨던 방식이 그랬어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날마다 쌓아오신 관심과 손길은 — 어떤 조건이 바뀌어도 그 온도가 식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의 힘인 것 같아요.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사랑은 — 나이도, 세월도, 어떤 바람도 쉽게 흔들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랑을 다시 쌓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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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울만은 청춘을 나이가 아닌 마음의 상태라고 했는데 — 저는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몸이 아파 꼼짝도 못 한 주말이었는데, 덕분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생각들을 꺼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AI가 아니라 사람과 이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 아마 더 따뜻한 글이 됐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