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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되어 묘한 마음이 듭니다. 이 작은 책은, 사실 사람과 사람을 그렇게 천천히 가까워지게 만드는 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늘을 위해 며칠 전에 어린 왕자를 인터넷 서점에 주문했고, 그 책이 오늘 배송되어 왔습니다. 요즘은 책을 읽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밀리의서재에서 낭독으로 듣기도 합니다만, 이 책만큼은 그렇게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왕자 안에 있는 삽화는 그냥 삽화가 아니거든요. 작가가 직접 그린 그 그림들이 본문과 한 호흡으로 짜여 있어서, 글과 그림이 떨어지면 작품이 절반이 됩니다. 그래서 종이책으로 다시 주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그 책을 펼쳤습니다. 어렸을 때 한 번, 스무 살 무렵에 또 한 번, 그리고 예순이 넘은 지금 다시 — 이 책과 세 번 만난 셈입니다. 어렸을 때는 그저 막연히 좋았고, 스무 살 때는 함께 읽어 줄 누군가가 있어 좋았는데, 오늘 다시 읽다가는 잠깐 눈물이 비쳤습니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오늘 이야기의 끝에 가서 함께 말씀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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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는 "길들이다"입니다. 원어로는 apprivoiser. 21장에서 어린 왕자가 묻습니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여우가 답합니다. "그건 너무 잊혀진 일이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이 말이 깊은 까닭은, 여기서 길들인다는 것이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누군가를 길들이는 사람은 동시에 길들여집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렇게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 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우는 말합니다. "네가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네 장미를 위해 보낸 시간이다."

이 한 문장이 어린 왕자라는 작품 전체의 중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어떤 빛나는 속성이 아니라, 그를 향해 내가 보낸 시간의 누적이라는 것. 세상에 장미는 수만 송이가 피지만, 내가 시간을 보낸 그 한 송이만이 나의 장미가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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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이어서 한 가지 비밀을 들려줍니다.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고, 그래서 가장 쉽게 닳아버리기도 한 문장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장이, 사실은 이 책의 가장 어려운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 결국 자기 시선의 습관 전체를 한 번 돌아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흑백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흑백 사진을 찍다 보면 한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의 본질이 더 또렷이 드러난다는 것. 화려한 색은 시선을 유혹하고 분산시킵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만 남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서 있는지가 보입니다.

어린 왕자가 일러준 그 시선은 — 색을 거두고 본질만 남기는 시선과 같은 결입니다. 다만 작품에서는 그것을 카메라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외형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먼저 보려는 마음.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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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 삶의 한 장면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에게도 어디선가 비슷한 장면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스무 살 여름, 한 여자아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제 눈길이 머문 곳은 얼굴도, 머리 모양도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가 신고 있던 양말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브랜드 있는 양말을 일부러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짧은 청바지 아래 발목에서 보인 건 그냥 브랜드도 없는 흰 양말이었습니다. 짧은 숏커트 머리에, 단정한 옷차림에, 그 흰 양말.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한 켤레의 흰 양말에서 그 아이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브랜드를 보려 할 때, 저는 어쩌다 보니 브랜드가 없는 자리에서 그 아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어린 왕자가 일러준 시선과 비슷한 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저는 책에서 그 명제를 읽기 한참 전에, 그 아이의 양말 앞에서 비슷한 것을 어렴풋이 만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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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장미를 위해 보낸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커피를 마시는 것부터 시작했고, 손을 잡는 데까지 여섯 달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매일 만났고, 매일 만나는 것도 부족해서 헤어져 집에 가면 또 편지를 썼습니다. 다음날 만나서 그 편지를 건네주고요. 나중에는 그 편지들을 모아 결혼하면 두 사람이 함께 책 한 권을 내자는 약속도 했습니다.

여우가 일러준 그 시간이 바로 이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만날 사람에게 굳이 편지를 쓰는, 효율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시간.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한 사람을 다른 누구와도 다른 단 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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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마지막 비밀을 들려줍니다.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다."

저는 이 한 문장이 어린 왕자에서 가장 무서운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시간이라고 말한 책이, 마지막에 이르러 책임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길들이는 시간이 끝난 뒤에도 — 어쩌면 그 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더더욱 — 그 길들임에 대한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저는 한 사건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스무 살에 만난 그 아이와 만 사 년을 만났고, 사 년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습니다. 딱 한 번이 있긴 있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제가 짜증 난 목소리로 한마디를 했더니, 함께 길을 걷던 그 아이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길 한복판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게 사 년 동안 제가 본 다툼의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습니다. 헤어지자는 말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아이가 그러더군요 — "오늘 그 말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붙잡고 만 스물네 시간을 울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그 뒤로 그 아이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건 만 일 년이 지나서 딱 한 번이었습니다. 매일 그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잊으려고 애쓰고 있을 그 아이를 또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 저는 끝내 전화를 걸 수 없었습니다.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오늘도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누가 물어와도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 아이의 어떤 부족함을 남들 앞에서 떠들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제게는 추호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사십 년이 지났는데도 저는 여전히 그 아이가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기가 싫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평생 다시 못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사십 년째 제 안에 살아 있다는 것 — 이것을 길들임의 책임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린 왕자의 그 한 줄을 읽을 때마다, 저는 자꾸 그 마음 쪽으로 시선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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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다른 한 축은 어린 왕자가 만나는 여섯 어른들입니다. 명령만 하는 왕, 칭찬만 듣고 싶어 하는 허영꾼, 부끄러움을 잊으려 술을 마시는 술꾼, 별을 세어 소유하려는 사업가,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과 강을 책에만 적는 지리학자. 다섯 명의 풍자가 한 명씩 펼쳐집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린 왕자가 유일하게 존경한 어른이 한 명 있습니다. 다섯 번째 별의 점등인입니다. 별이 너무 빨리 도는 바람에 일 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끄는, 보기에는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어른이지요. 어린 왕자는 왜 그를 존경했을까요? 작품의 답은 분명합니다. "그는 적어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저는 이 한 문장이 어린 왕자의 여섯 행성 풍자 전체를 단숨에 압축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욕도, 인정 욕구도, 자기 도피의 술도, 소유욕도, 죽은 지식도, 결국은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오직 점등인만이 자기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의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 무의미해 보이는 노동이 사실은 가장 인간적인 일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 한 줄이 — 앞서 여우가 일러준 길들임의 책임과 — 멀리서 한 호흡으로 닿아 있다고 느낍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 누군가를 잊으려 애쓸 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 그리움을 삼키는 사람. 둘 다 같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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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여자를 만나면 저는 어린 왕자가 가르쳐 준 그 사랑법을 시도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신이 들고 나면,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어린 왕자가 또 하나의 소행성을 다녀온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린 왕자가 일곱 행성을 떠돌듯이, 어쩌면 저도 제 사랑의 작은 소행성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며 그 별들 사이를 떠돌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순간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그 길들임이 줄곧 저 혼자만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 거기서 저는 조용히 이별을 고합니다. 그러고는 또 다음 소행성으로 떠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린 왕자의 7행성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저는 풍자의 대상에 저 자신도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다고 믿었던 일이, 사실은 자기 행성 안에서의 자기 순환이 아니었나. 어린 왕자가 어른들을 풍자한 그 시선은, 책을 읽는 우리 자신에게도 같은 강도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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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의심하면서도 저는 그 사랑을 쉽게 놓지 못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다 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미운 얼굴도 어느새 예뻐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한 사람을 위해 보낸 시간이 그 사람의 외형을 다시 그려내는 — 그것이 어린 왕자가 일러준 "마음으로 본다"는 말의 한 자락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곧 노년이 다가옵니다. 누구든 나이가 들면 몸은 아파지고, 마음은 외로워집니다. 그 시간을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오롯이 건너가야 할 사람. 달콤한 시간을 약속하는 사람보다, 불편한 시간을 함께 견뎌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면서, 그 마음이 한 번 더 또렷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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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팔십 년이 넘도록 이 세상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 그것이 동화의 외피를 입고 있어서도 아니고, 철학적으로 깊어서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일러준 이야기는 결국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올바로 사랑해야 하는가, 그 방법입니다.

세상에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흔한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깊은 말도 없고,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어려운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 왕자는 그 어렵고 깊은 단어를 — 동화의 얼굴로, 가장 짧고 또렷한 문장들로,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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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입부에서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왜 눈물이 비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였던가,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저 막연히 "좋다"라고만 느꼈습니다. 무엇이 왜 좋은지는 그 나이의 제가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고 오늘 책을 다시 펴고 보니 — 그 책이 어느 자리에선가 저의 이야기와 닿아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알아챘습니다. 막연히 좋았던 그 책이, 어쩌면 그때부터 제 안에서 무언가를 가만히 자라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눈물이 잠깐 비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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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카톡 프로필 사진을 어린 왕자 그림으로 바꿔 두었습니다. 몇 년 만의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 한 명의 어린 왕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별 위에, 각자의 장미를 두고, 누군가를 길들이며 — 동시에 길들여지며 — 살아가는. 오늘 어린 왕자를 함께 읽은 여러분 안에도, 한 명의 어린 왕자가 살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