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404 아라한강갑문(사진)
오늘은 또 지하철 사고가 나서 2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동영상을 촬영해서 jtbc 등에 전달했다고 한다.
우리말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오늘도 하루종일 답답하기만 하다.
세월호 참사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는듯 하다.
1. 배가 사고가 나서 침몰하기까지의 문제.
2. 침몰하는 세월호에 대한 해경의 자세와 지난시간동안 해경의 구조.
3. 그러한 일련의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청와대 및 정부의 모습.
이는 세월호라는 큰 배가 침몰하고 수백명이 미처 대피하지도 못하고 연안바다에 빠지게된 것까지는 사고겠지만,
연안바다에서의 사고에서 단한명의 생존자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고 이젠 시신의 유실마저 걱정하고 있는 해경의 모습은 분명한 사건이며, 그런 해경에 아직까지도 세월호 참사의 수사권을 맡기고 있는 정부의 모습에서 찾아볼수 있다.
처음 일주일간의 보도는 뉴스를 보고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소린가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많았었다.
정부에서는 선장을 비롯한 몇몇 선원들만 살인마처럼 몰아가고 있었고, 구조작업은 도대체 어찌 되는건지 이해할수 없었다.
최근에는 점차 뉴스의 촛점이 세월호에서 해경쪽으로 넘어가고 있는듯 하다.
그런데 최근에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인터넷을 찾아서 동영상을 보고 나서 한 이틀쯤 지나면 그게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하고 있다는거다.
한 곳에서 그부분이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하면 다른 언론들도 입다물고 언제까지나 무시할수 없으니 결국 떠들기 시작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의혹으로 붉어지는거다.
그렇게 해서 요즘 부각되는 것이 해경과 청해진의 관계에서 해경의 이용욱 국장이 도마위에 오르게 되고, 해경과 구조업체인 언딘과의 관계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까지는 이번 사건이 워낙 많은 희생자가 나오다 보니 희생자 가족분들이 고군분투하셔서 갖가지 자료들을 인터넷을 통해 올리시기도 했었고, 무참히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분개해서 이에 동참하고 감시의 눈을 치켜뜨고 있었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희생된 어린 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안된 일이지만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어린 학생들도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고 있을 거라 짐작하고 또한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 안타까운 생명들을 달래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청해진 해운의 유병언 회장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오대양사건은 1991년에 31명이 집단 자살을 했고, 전경환 새마을 회장(전두환 전대통령의 형)도 물러나게 했던 커다란 사건이다.
당시에도 유병언 회장은 5공의 실세중의 실세인 전경환 새마을 회장과 로비해서 한강유람선 독점권을 따내는 등 가까운 사이로 밝혀졌었고, 오대양사건에서도 갖가지 여러 의혹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아 오늘날 또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그렇게 로비에 능한 유병언회장이 이끌어온 청해진 해운이 최근까지도 연안 해운업계에서 상당한 부분을 독과점해왔으니 해경과도 어느정도 끈이 닿아있으리라는 것도 누구나 손쉽게 짐작할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사고수습 및 수사를 해경이 계속 맡아 하고 있다.
이제 해경의 여러 의혹들이 보도되기 시작됐고 지방 선거까지 얼마 안남았으니 아마도 언제까지나 해경의 수사로만 끝나지는 않을듯 하지만, 과연 이 사건이 어디까지 가고 어떻게 될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할듯 하다.
또한 이번 사건 이후에 세월호 하위 선박직 선원들은 어떤 처벌이든간에 다시 그러한 일을 하기 어려울거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겨우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위험을 무릎쓰고 과적을 하고 그런거니 말이다.(선장의 월급이 약 250만원이라고 하니 하위 선박직 직원의 봉급이 얼만지는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무리한 과적은 회사에서 이미 그들에게 너희들은 죽어도 회사는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메세지를 준거다. 불안불안한 배를 붙잡고 윗선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일을 할수 없기에 억지로 출발한 그들이 얼마나 투철하게 승객들을 살리려 하겠는가.)
그들은 아마 겁나서 다시는 그렇게 못할거다.
사고 수습을 위해서 애쓰는 것도 결국 우리들 서민들이다.
현재도 진도에 온 지원물품들은 대부분 국가지원이 아닌 국민들이 보낸 지원품들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거기서 희생해가면서 일을 하시는 분들도 생명을 담보로 애쓰시는 민간잠수부 분들과 자원봉사자 분들이다.
그러나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큰 사건에도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으로 대충 때우고 자리 보존을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는 고위공직자 분들과 정치인,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하시는 일부 기업가 분들일게다.
오늘 또 이대로 그냥 넘어간다면 그들은 그렇게 해도 이상이 없다는 것으로 느끼고 내일은 아마 더 큰 사고를 칠지도 모를일이니 말이다.
사실 세월호 참사는 1993년 서해훼리호 참사와 정말 너무나도 똑같이 닮아있다.
서해페리호 기사를 다시 읽어보니 이게 세월호 기사인지 페리호 기사인지 모를정도로 닮아있었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아래에 서해페리호 기사를 찾아서 원본을 그대로 올려두었으니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때도 침몰원인은 과적이었으며, 그때도 200여명이 탑승했었고 그중에 무려 140여명의 죄없는 죽음이 있었다.
굳이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이번엔 구조작업을 지휘한 해경의 문제까지도 함께 도마위로 올라가게 되었으니 오히려 더 후퇴한 셈이다.
그럼에도 그때는 그런 사고를 겪고서 정확히 일년후에 또 성수대교 붕괴라는 어이없는 일을 맞게 된다.
성수대교 붕괴 7개월후에 또 삼풍백화점 붕괴를 맞게 되고..
그 뒤로도 너무나도 많은 어이없는 대형 참사들이 연이어 벌어졌었다.
이제는 똑같은 사건이 두번째 발생하기 시작한다.
언제또 무슨 사고가 우리일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면서 2년전 부처 이름도 행정안전부에서 안전행정부로 바꿨던 정부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의혹들을 보면 그후에 변화가 있었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이젠 정부에만 모든걸 믿고 맡기지 말고 우리들이 모두 제대로 모든 일이 되는지 감시하고 문제점을 체크하여 우리 스스로를 지켜 나가야 할듯 하다.
더이상 어이없는 대형참사들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그것이 바로 나의 사고가 되기 전에 말이다.
무리한 항해
예고된 인재
정원초과 안전규정 무시
높은 파도에도 폭풍주의보 발효 안돼
악천후에도 불구한 무리한 항해, 승선인원조차 파악못한 해상안전규정무시등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대참사였다.
10일 오전 전북 부안군 위도면 임수도 부근에서 일어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는 어김없는 인재였음이 속속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날 사고해역에는 높이 3~4m의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으나 기상청의 폭풍주의보조차 발효되지 않아 서해페리호는 운항을 강행했고 안전수칙 역시 무시돼 구명조끼는 전시용에 불과했다.
특히 연안여객선은 해운조합과 해운항만청 통신실에 승선인원과 출항신고를 하도록 돼 있으나 사고선박은 이같은 보고를 하지않아 실정자 신원등이 사고 발생 14시간이 되도록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고순간
생존자들은 사고선박의 갑판위에 서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동영씨(29)는 위도 파금장항을 떠난 배가 10여분뒤에 높은 풍랑으로 오른쪽으로 선체가 완전히 기울었으며 수면으로 치솟은뒤 다시 선체가 기울면서 물속으로 처박혀 그대로 침몰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배의 중간 갑판위에 서 있다가 물속으로 잠겼으며 아이스박스를 붙잡은뒤 사고선박에서 자동으로 펼쳐진 구명보트로 올겨타 살아났다는 것.
친목계원 12명과 함계 위도로 낚시를 나왔다가 구조가 된 이남수씨(38)와 박병길씨(51)등은 사고선박의 갑판위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기울자 일부 승객들은 선실안으로 뛰어들었으며 그순간 배가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침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배가 처음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후 침몰한 것은 불과 10여초 사이였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
페리호 침몰사고는 기상당국의 기상관측과 실제 기상상황의 차이를 무시하고 기상악화에도 출항을 강행하다 돌풍을 만나 빚어진것으로 추정하고있다.
군산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위도에 설치된 무인 자동기상관측기에서 보내온 기상관측자료에는 오전 9시경 현재 기상상태는 평균풍속 6.4m(초속). 순간최대풍속 10.5m였으며, 오전 10시 현재는 평균풍속 7.1m,순간최대풍속 11.6m로 폭풍주의보 발효 기준인 '평균풍속 10m이상이 2시간이상 지속, 순가 최대풍속 20m이상이 2시간 이상지속'에 크게 못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간서해페리측은 이날 오전 위도와 군산앞바다 등에는 상당한 강풍이 불었고 파도도 높아 선박 출항이 위험스런 상황이었으며 실제로 군산항에서는 군사 어청도를 운항하는 자사소속 80톤짜리 새마을 12호가 출항도중 되돌아왔다고 밝혀 기상당국의 기상관측과 실제 기상상황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조작업
부안 앞바다 여색선 침몰사고는 사고 직후 구조선의 출동이 늦고 풍랑이 심해 주고작업이 지연됨에 따라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살아난 승선자들은 사고해역의 풍랑이 심해 헤엄쳐 나오기가 어려웠으며, 구조선의 출동이 늦어 많은 사람이 사망한것 같다고 말하고 사고선박에서 긴급 구조요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해구 내무장관은 10일 경찰헬기를 이용, 부안여객선 침몰 사고 현장에 내려가 구조 상황을 돌아보고 이강년 전북지사와 박일용 해영경찰청장에게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 생존자 구조와 사고 수습에 총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내무부는 전북도청에 사고대책상황실을, 부안군청에는 사고수습대책본부를 각각 설치하는 한편 관내 병의원에 대해서는 응급환자에 대비, 비상근무토록 조치했다.
전북도도 서해페리호 승객 구조와 사후 수습을 위한 사고수습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이강년 전북도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여색선 사고수습대책본부는 전북도와 전북지방경찰청, 9군단,35사단, 군산지방 해운항만청,군산해양경찰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계시 교통장관은 이날저녁 해운항만청 여객선 사고수습대책본부를 방문 연안여객선에 대한 일제 안전점검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1993.10.11. 매일경제신문 보도기사
- 독도 향하던 '돌핀호' 회항…안전불감증 여전 - 기사링크.
위 기사에서 310t 여객선 한척이 엔진고장을 일으켰는데, 1000t과 5000t경비함이 한꺼번에 출동해서 호위해서 귀항했단다.
5000t이면 이번 세월호 사고때 침몰중이라는 보고까지 받고 구조출동한 경비함보다도 더 큰 경비함이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수입당시는 6500t급이고 증설후 7000~8000t, 사고후 처음 출동한 경비함은 3000t급 1척으로 알고 있다.)
최근 해경이 도마위에 오르면서 달라진거다.
사실 이게 맞는거다.
해경의 업무 첫번째는 해상에서의 국민의 보호다.
국민이 위험에 처하면 해경은 구조업체 선정만 신경쓰고 있을게 아니라 긴장해야 한다.
아마도 이 사건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