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지 동쪽에 있는 건물로, 광해군 때 처음 지어졌다. 지금의 건물은 숙종 18년(1692)에 재건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이익공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원래는 건물 앞쪽에 ‘춘당대(春塘臺)’라는 마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창경궁의 담으로 막혀 있고 ‘춘당지(春塘池)’라는 연못으로 바뀌었다.
영화당은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활을 쏘기도 한 정원이었는데, 정조 때부터 과거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다. 영화당에는 왕이 참석한 가운데 시관이 자리하여 시제를 내리고, 춘당대에서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 시험을 보았다.
조선 시대의 궁궐에 대한 기록인 ‘궁궐지(宮闕志)’에 의하면, 건물 안에 선조, 효종, 현종, 숙종의 편액이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다.
영화당은 특별한 꾸밈이 없는 소박한 건물이면서도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져 한국의 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춘향가에서 이도령이 장원급제할 때의 시제가 영화당과 관련된‘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이었다.